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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김수환(추기경)
         [[10.26 사건]]으로 [[박정희]] 대통령이 사망하고 들어선 군부독재와 5공화국 체제에서도 김수환 추기경은 독재를 비판하는 날선 태도를 굽히지 않는다. [[박종철 고문치사 사건]] 당시 아래 어록에도 나오는 '[[카인]]의 대답'이 대표적. 결국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된 6월 항쟁은 [[전두환]] 정권이 몰락하는 가장 큰 계기가 된다. 6월 항쟁 당시 [[명동성당]]에 들어온 시위대를 연행하기 위해 경찰이 투입되려 하자 "경찰이 들어오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, 그 뒤에 [[신부(종교)|신부]]들, 그 뒤에 [[수녀]]들이 있을 것이오. 그리고 그 뒤에 학생들이 있을 것이오"라 일갈한 것도 유명한 일화. 이 밖에도 [[5.18 민주화운동]]이 일어나자 당시 [[광주대교구]]장 [[윤공희]] 대주교에게 편지와 함께 긴급구호를 위해 쓰라며 1,000만원 수표를 보내고, 전두환을 직접 찾아가 "그만해 달라"고 부탁하는 등 사태를 막아 보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. 전두환이 귓등으로도 듣지 않아 안타깝게도 실패했지만. 또 1984년 [[교황]] [[요한 바오로 2세]]의 방한 시 광주 방문을 적극 추진하여 [[교황]]이 직접 [[금남로]]와 [[전라남도청]] 등을 방문하게 된 사실이 밝혀졌다. [[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]]에서도 당국 관련자들을 '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파렴치'하다고 강하게 비판하는 등, 당시 정부에 대한 공개적인 일갈을 서슴지 않았다.
  • 김종호(1935)
         1981년 [[제11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민주정의당]] [[전국구]]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. 같은 해부터 1983년까지 [[대한민국 국회]] 내무위원장을 역임하였다. 1985년 [[제12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충청북도 진천군-음성군-괴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[[한국국민당(1981년)|한국국민당]] [[김완태(정치인)|김완태]]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.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역임하였다. 1986년 내무부[[장관]]에 임명되었으나 1987년 1월 [[박종철 고문치사 사건]]에 따른 민심 수습책으로 경질되었다. 내무부 장관으로 민주화운동세력, 학생운동권에 대한 강경대응을 지시해서 [[박종철]] 사건을 촉발시켰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. 경찰관계자들의 증언으론 김종호 장관이 '‘대통령 임기가 1년밖에 안 남았다. 정치일정이 있으니까 3월 개학 때까지 모든 사건을 끝내라’'는 지시를 내렸고, 일선 경찰들은 장관이 제시한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 즉 개학전까지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무차별적인 연행과 무리한 강압수사(=[[고문(범죄)|고문]])을 했다는 것이다.
  • 안상수(창원)
         [[마산고등학교]], [[서울대학교 법과대학]]을 [[졸업]]하고 사시에 합격해 [[검사(법조인)|검사]] 생활을 한 검사 출신이다. [[박종철 고문치사 사건]] 당시 서울지검 평검사였고, 부장검사인 [[최환]]의 지휘를 받아 해당 사건을 수사한걸로 잘 알려져 있다.
         그러나 안상수가 해당 사건 해결의 주역을 자처한 것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. 가장 큰 배경은 2009년 [[진실·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]]의 <[[http://www.jinsil.go.kr/appdealing/databoard/app_read.asp?num=250&pageno=1&stype=app_title&sval=%B9%DA%C1%BE%C3%B6&data_years=&data_month=|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관계기관대책회의 은폐·조작 의혹]]> 보고서이다. 이 때문에 안상수가 박종철 관련으로 책을 쓰고, 그 인세를 기부한다고 했던 박종철 기념사업회가 인세를 거부한 바 있다[[http://www.pressian.com/news/article.html?no=18031|관련기사]]. 박종철의 1년 선배였던 서울대학교 [[조국(인물)|조국]] 교수도 안상수의 역할을 부정했고[[http://www.hani.co.kr/arti/politics/politics_general/514632.html|관련기사]], 당시 구속되어서 [[박종철 고문치사 사건]]을 외부에 알린 [[이부영]]의 편지를 [[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]]에 전달한 것이 뒤늦게 드러난 한재동 당시 교도관도 주도를 [[최환]]이라고 증언했다.[[http://www.ohmynews.com/NWS_Web/View/at_pg.aspx?CNTN_CD=A0000402353|관련기사]]. 안상수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것은, 안상수가 관련 책[* 1995년 동아일보사를 통해서 출판한 <이제야 마침표 를 찍는다: 박종철 사건 수사 검사의 일기>가 대표적이다.]을 쓰고 스스로의 공적을 과장해서 알린 반면에, 이후에 꾸준히 법조계에 몸담았던 최환 당시 공안부장검사나, 퇴직시까지 스스로의 신분도 알리지 않았던 교도관 등은 외부에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. 즉 [[박종철 사건]] 폭로에 들러리는커녕 방해한 주제에 [[최환|남]]의 공을 가로챈 것이라고 봐도 무방한데, 아직까지도 선거 때마다 민주 검사 드립을 치고 있다.
  • 우현(배우)
         영화 [[1987(영화)|1987]]에서는 전술한 대로 강민창 치안본부장 역을 맡았다. 영화의 소재인 [[박종철 고문치사 사건]] 때 치안본부장이었던 그 사람이다. 우현 본인이 1987년 당시 학생운동을 했었으니 아이러니한 일. 본인은 배역보다는 영화 출연에 의의를 둔다고. ~~[[안내상]]이 안 나온 게 한이다.~~
  • 이희준
         2017년 영화 《[[1987 (영화)|1987]]》에서는 [[박종철 고문치사 사건]]의 진실을 파헤치려 애쓰는 ‘윤기자’ 역을 연기하였다.<ref>{{뉴스 인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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